알림방에 소녀상 설치 반대에 관하여 그냥지나갈 수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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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전
봄이네
기타
안녕하세요. 저는 오클랜드에서 두아이와 함께 살고있는 김봄입니다.
알림방의 소녀상 설치 반대의 글을 보면서 다른의견도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1. 분열의 원인에 대한 왜
글에서는 “90%가 반대했다”는 수치를 근거로 분열을 피하기 위해 소녀상 건립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분열의 원인은 소녀상 자체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피해자를 외면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르완다 집단학살 추모관도 현지 반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기념과 교육의 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분열을 두려워하기보다 진실을 직면하고 다음 세대가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고통받았던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 모여 외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분열의 상징이 아니라, 상처 입은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기억의 연대였습니다. 진정한 분열은 기념을 거부할 때 생기는 것이지, 기억을 지킬 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2. 외교 마찰을 핑계로 한 회피
“외교적 마찰”은 피해자 인권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흔한 핑계입니다. 실제로도 일본 정부는 소녀상 설치가 있을 때마다 반발했지만, 그 반발은 일본의 역사 부정 태도를 드러내는 것일 뿐입니다. 인권과 정의는 외교보다 우선입니다. 전쟁 범죄의 피해자 문제를 외면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국제 관계를 세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소녀상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전시 성폭력 근절의 상징이 되었고, 뉴질랜드 같은 다문화 사회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큽니다.
3. 정치적 이용 가능성이라는 모호한 공포 조장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말은 사실상 모든 기념물에 적용될 수 있는 빈약한 논리입니다. 전쟁 추모비, 안작 데이(ANZAC Day) 행사도 정치적 연설이 동반되지만, 그 의미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정치적 이용 가능성 때문에 기념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주장에 불과합니다.
4. 뉴질랜드 이미지와 ‘중립성’의 왜곡
뉴질랜드가 진정한 다문화, 인권 존중 국가라면 역사적 진실과 피해자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중립성에 부합합니다. 침묵이나 방관은 중립이 아니라 가해자 편에 서는 것입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전쟁 피해를 기억하는 일은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것입니다.
5. 대안 제시의 기만성
글에서 “소녀상 대신 교육 프로그램이나 전시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대안’은 결국 피해자의 목소리를 눈에 잘 띄지 않게 밀어내려는 시도입니다. 기념 조형물은 그 자체로 강력한 상징성을 가지며,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이 쉽게 역사와 인권 문제를 직면하게 만듭니다.이보다 가성비있는 교육프로그램은 없습니다.
6. 전쟁 참혹함을 알릴 기회 박탈
아이들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고 평화의 가치를 심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소녀상은 단순히 과거의 상처를 들추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평화의 교육 현장이 됩니다. 소녀상을 통해 아픈 역사를 배우고 느낄 기회를 잃게 하지 말아주세요.
알림방의 소녀상 설치 반대의 글을 보면서 다른의견도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1. 분열의 원인에 대한 왜
글에서는 “90%가 반대했다”는 수치를 근거로 분열을 피하기 위해 소녀상 건립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분열의 원인은 소녀상 자체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피해자를 외면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르완다 집단학살 추모관도 현지 반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기념과 교육의 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분열을 두려워하기보다 진실을 직면하고 다음 세대가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고통받았던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 모여 외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분열의 상징이 아니라, 상처 입은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기억의 연대였습니다. 진정한 분열은 기념을 거부할 때 생기는 것이지, 기억을 지킬 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2. 외교 마찰을 핑계로 한 회피
“외교적 마찰”은 피해자 인권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흔한 핑계입니다. 실제로도 일본 정부는 소녀상 설치가 있을 때마다 반발했지만, 그 반발은 일본의 역사 부정 태도를 드러내는 것일 뿐입니다. 인권과 정의는 외교보다 우선입니다. 전쟁 범죄의 피해자 문제를 외면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국제 관계를 세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소녀상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전시 성폭력 근절의 상징이 되었고, 뉴질랜드 같은 다문화 사회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큽니다.
3. 정치적 이용 가능성이라는 모호한 공포 조장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말은 사실상 모든 기념물에 적용될 수 있는 빈약한 논리입니다. 전쟁 추모비, 안작 데이(ANZAC Day) 행사도 정치적 연설이 동반되지만, 그 의미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정치적 이용 가능성 때문에 기념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주장에 불과합니다.
4. 뉴질랜드 이미지와 ‘중립성’의 왜곡
뉴질랜드가 진정한 다문화, 인권 존중 국가라면 역사적 진실과 피해자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중립성에 부합합니다. 침묵이나 방관은 중립이 아니라 가해자 편에 서는 것입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전쟁 피해를 기억하는 일은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것입니다.
5. 대안 제시의 기만성
글에서 “소녀상 대신 교육 프로그램이나 전시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대안’은 결국 피해자의 목소리를 눈에 잘 띄지 않게 밀어내려는 시도입니다. 기념 조형물은 그 자체로 강력한 상징성을 가지며,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이 쉽게 역사와 인권 문제를 직면하게 만듭니다.이보다 가성비있는 교육프로그램은 없습니다.
6. 전쟁 참혹함을 알릴 기회 박탈
아이들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고 평화의 가치를 심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소녀상은 단순히 과거의 상처를 들추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평화의 교육 현장이 됩니다. 소녀상을 통해 아픈 역사를 배우고 느낄 기회를 잃게 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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